칼럼

 
작성일 : 22-07-05 11:58
"경청은 위로입니다" RTP지구촌교회 이철 목사 Raleigh.Durham.Chapel Hill.Cary North Carolina 한인교회 Korean church 이민 정착 방문 지역 정보 랄리 채플힐 캐리 덜햄
 글쓴이 :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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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것에는 그냥 들리는 것을 듣는 것(hearing)이 있고, 귀와 주의와 마음을 기울여 드는 것(listening), 즉 경청이 있습니다. 저도 가끔 제 처에게 한 소리 듣습니다. “아이들이 말할 때 잘 들어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화하다 보면 할 일도 생각나고, 설교 준비할 내용도 생각납니다. 그러다 보면 귀 기울여 계속해서 듣는 것이 쉽지 않아요. 주의와 마음을 기울여 듣는 것은 참 힘든 노동입니다. 물론 교회 성도들을 만나거나 회의를 할 때는 경청하려고 무지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 또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정 등 관계 속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청이 상대방에게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경청이 어떻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위로할까?”(노만 라이트)라는 책에서 경청은, “상대방의 말이 끝나면 뭐라 말할지를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대답할 말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며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는 일이 경청입니다. 노만 라이트는 경청은 상대방의 말하는 방식이나 내용에 대해서 완전히 받아들여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먼저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의 말 자체와 그 사람 그대로를 받아들여주는 행위가 경청입니다. 그렇게 경청을 하다 보면 상대방은 자신이 용납 받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의 마음, 감정, 생각, 인격이 용납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상대방은 위로를 경험하게 됩니다. 경청은 그 자체가 공감이 됩니다. 경청이 상대방의 말 뿐만 아니라 감정을 이해하고 용납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공감을 느낄 때 상대방은 위로를 경험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116:1-2).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경청하십니다. 경청하심으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경청하심으로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며 부르짖으며, 회개하며 주님께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가 우리에게 큰 위로의 자리가 됩니다.

경청하심으로 위로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경청하심으로 그분이 우리를 용납하여 주시는 사랑을 충만히 누리게 됩니다. 또한 그를 통하여 우리는 울고 웃으며 위로를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같이 우리도 다른 사람들의 말에 경청하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경청으로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전해지길 소망합니다. 저도 이제 온 마음과 감각과 힘을 다하여 제 처와 아이들, 그리고 성도들,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길 결단합니다. 경청으로 위로의 손길로 하나님께 쓰임 받길 소망해 봅니다. 또한 그렇게 경청으로 위로를 나누는 저희 모두가 되길 소망하며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