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작성일 : 13-07-1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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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Doulosmin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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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에 대한 이해와 의미
 
사순절(Lent)은 부활절 주기(사순절-부활절-오순절)에 속한 절기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기간이다. 기독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이 기간을 부활절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도와 금식과 자기 성찰의 시간으로 지키고 있다. 대림절이 성탄절을 앞두고 4주 동안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라면, 사순절은 부활절을 앞두고 40일 동안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한다. 사순절 기간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로부터 시작하여 부활절 전야까지 40일 동안인데 이 기간 사이의 5번의 주일은 부활절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포함하지 않는다. 재의 수요일이란 우리의 죄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하나님의 피조물됨을 기억하며 보잘것없는 인생에 다시 한 번 생기를 불어 넣어주시기를 바라는 간구의 날인데, 매년 달라지는 부활절 날짜에 따라 빠르면 2월 첫째 주, 늦으면 넷째 주에 해당한다. ‘40’이라는 숫자는 노아 시대의 40일 홍수, 모세의 시내산 사건에서의 금식 기간, 엘리야의 호렙산 기도 기간, 요나의 니느웨 선교, 예수님의 광야 시험과 관련 있다.

사순절의 신학적 의미
사순절은 침(세)례와 깊은 관련이 있는데 초대 교회로부터 부활절 전야에 베푸는 침(세)례를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이미 침(세)례 받은 사람들은 침(세)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참회함으로 부활절을 준비한다. 사순절의 의미는 부활과의 관계에서 정립된다. 사순절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부활에 이르는 예수의 구속의 신비로운 능력을 드러낸다. 누구나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새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한다는 것은 옛 사람을 버리고 옛 생활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사순절의 메시지는 ‘우리가 받은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부활은 죽음 이후의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할 때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중요한 이유다. 바울이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라고 말한 대로 살아보는 기간이 된다. 이 때 우리의 소유, 권리, 삶의 방식, 인간관계, 계획이 영원한 것들이 아님을 상기하며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라”(창 3:19)는 말씀에 응답한다. 흙으로 돌아가 썩어질 우리가 부정될 때 영원한 생명이 드러나며 죽음조차도 절망적인 것이 아님이 체득될 것이다. 우리는 세례에서 이미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사순절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종려주일)으로부터 시작하는 고난주간(Holy Week)의 주제는 ‘고난(passion)’이다. 이 기간은 주의 만찬과 십자가 묵상을 위한 좋은 시기다. 그런데 사순절은 사순절의 고난의 분위기, 종려주일의 환영의 분위기, 고난주간의 죽음, 부활절의 기쁨의 분위가 너무 밀착되어 있어서 부자연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수난과 죽음의 긴 기간 후에 급히 부활로 변환하는 예전을 행하는 것이 못내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축제성(festivity)의 효과는 주어진 분위기와 감정이 점차로 고무되다가 극대화될 때 온다. 그런 면에서 사순절의 절제와 경건의 무거운 분위기 속에 있다가 고난 주간의 고난과 죽음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게 되는데, 그 다음날로 부활이라는 기적을 기쁨과 환희로 한 번에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감정적인 표현에 있어서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별한 요소는 동방교회에서는 이 절기를 ‘밝은 슬픔의 절기(Season of Bright Sadness)’로 표현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http://moksin.duranno.com/common/news/listbody.asp?a_site=3_0&po_no=32643
("목회와 신학", 2013년 2월호에서 발췌)